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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급박한 발소리
하지만 한 사람은 섭정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섭정왕이 떠난 후에도 황제는 계속 자리를 지켰다.
황제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쑥덕거리기에 바쁜 신하들을 내려다보았다.
면류관의 술 뒤로 기괴한 미소가 떠올랐다.
황제의 웃는 얼굴은 기다란 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고 공공은 황제 뒤에 조용히 서서 모든 걸 지켜보았다. 그는 대조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괴이하게 느껴졌다.
꼿꼿하게 앉아 있던 황제가 말했다.
“사람을 보내어 짐의 황숙이 무엇이 하는지 알아보거라. 황숙 모르게 멀리서 지켜보라고만 하라.” “예, 폐하.”
고 공공은 짧게 대답하고는 대전을 나갔다.


섭정왕은 조회를 마친다는 선포를 하자마자 자리를 떴다.
다리가 긴 섭정왕은 걸음도 빨랐다. 실시간파워볼
머릿속에는 추위에 벌벌 떨며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는 심균당의 모습만 떠올랐다.
조회가 끝났을 때 섭정왕은 몹시 후회스러웠다.
애송이 녀석은 반골 기질이 강해 길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반항심이 강한 심균당을 좋아하라고 섭정왕에게 강요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본인이 자초할 일인데 누구를 탓할까!
애송이는 몸이 약했는데 요 며칠 그나마 건강이 좋아졌다고 했다.

온천별장에서 재배한 신선한 채소를 많이 먹은 덕이리라.
그런데 오늘 추위에 떠는 바람에 몸이 많이 축났을 것이다. 병이 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심균당이 동상이라도 걸리면 속상해지는 파워볼사이트 건 섭정왕이었다.
섭정왕은 정말 후회막급이었다. 하지만 그는 얼굴에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섭정왕이 만민전을 나서자 진천화가 뒤를 따랐다. 그는 섭정왕의 얼굴을 힐끗 살펴보았다.
섭정왕이 쏜살같이 한 방향으로 곧장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진천화는 이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진천화는 섭정왕의 뒤를 따르는 위 공공에게 다가갔다.
진천화는 슬쩍 떠보듯 위 공공에 말을 걸었다.
“위 공공, 전하께서 영흥후에게 가는 것이오?” 위 공공은 진천화를 째려보았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오?’라는 눈빛이었다.
진천화의 머릿속이 하얘졌고 몸이 얼음처럼 굳었다.

옆에서 걸어가던 위 공공은 진천화한테 걸려 넘어질 뻔했다.
화가 치민 위 공공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파워볼게임
“진 장군, 대체 길을 어떻게 걷는 것이오? 넘어질 뻔하지 않았소.” 진천화는 손으로 허벅지를 세게 때리며 울상을 지었다.
“이거 야단났군!”
위 공공은 울상을 짓고 있는 진천화를 보고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진 장군,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표정만 봐서는 꼭 어머니라도 돌아가신 것 같소만…….” 진천화는 멀어져 가는 섭정왕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위 공공, 방금 영흥후가 혼절했소.” 위 공공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는데 진 장군은 왜 소인에게 말하지 않았소?” 진천화한테 그 말을 듣자마자 위 공공은 당장에라도 그의 머리를 갈라 보고 싶었다.
위 공공은 거기에 사람의 뇌가 아니라 돼지의 뇌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어떻게 만민전에 들어간다는 말이오. 대조회의 규정에 따르면 측근 시위도 조회 중에는 만민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걸 모르는 거요?” 진천화가 발끈했다.
위 공공은 그런 진천화를 손가락질했다.
“이런 멍청한 사람을 보았나! 장군의 머리는 돼지 머리가 틀림없소. 장군이 들어올 수 없으면 태감을 시켜 알리면 될 것이 아니오! 이따가 전하께서 역정을 내시면 진 장군이 알아서 하시오.” 진천화는 그제야 머리가 돌아가는 듯했다.
‘맞아, 내가 들어갈 수 없으면 다른 사람을 들여보내면 되는 거였는데. 아이고, 이 멍청이 같으니!’ 진천화는 몹시 후회가 되어 자기 머리를 세게 때렸다.
위 공공은 진천화를 ‘바보 멍청이’라고 속으로 욕해 주고는 섭정왕을 쫓아갔다.
혼절한 영흥후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재수가 없으려니까, 정말…….’
섭정왕은 누구보다도 먼저 복도 근처에 다다랐다.
복도는 만민전 광장을 빙 둘러싸고 있었고 사방이 엔트리파워볼 탁 트여 있었다. 복도에서는 바람을 피할 곳이 없었다.

섭정왕은 복도 가까운 곳에 서서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섭정왕은 복도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웅크리고 있는 심균당이 보였다.
심균당은 복도 기둥에 기댄 채 쪼그려 앉아 있었다. 옷자락 밑에도 눈이 쌓여 있었다. 왜소하고 마른 탓에 복도 밖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심균당은 두 팔로 무릎을 감싼 채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섭정왕의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는 손에 피가 보일 만큼 주먹을 꼭 쥐었다.
섭정왕은 잰걸음으로 심균당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태산처럼 듬직하던 그의 발걸음이 조금 흐트러졌다.
‘부디 아프지 마라.’
찬바람이 세차게 불고 눈도 그치지 않았다. 심균당은 복도 구석에서 몸을 감싼 채 체온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심균당은 유일한 희망을 기다리는 성냥팔이 소녀가 된 기분이 들었다.
머리가 점점 뜨거워졌다. 뜨거운 머리를 식히려 바닥에 있는 눈으로 이마를 식혀 볼까도 생각했다.
북풍이 귓가를 매섭게 스치고 지나갔고 의식은 점점 흐려졌다.
언제부터인가 눈도 스르륵 감겼다. EOS파워볼
사람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몸을 일으켜 주었다. 진천화의 투박한 얼굴이 보였다.
심균당은 눈을 뜬 후에야 눈과 얼음이 깔린 곳에서 혼절해 있었다는 걸 알았다.
의식을 잃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혼절하지 않았다면 길디긴 두 시진을 견디지 못했을 것 같았다.
진천화는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왔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가 감히 심균당을 도울 리 없었다.
진천화는 심균당을 깨운 다음 물주머니를 열어 따뜻한 물을 먹였다.

심균당에게는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심균당은 물주머니를 진천화에게 돌려주며 가라고 했다.
뜨거운 물을 마신 심균당은 정신을 차렸지만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온몸이 쑤셨고 머리는 뜨거웠다.
하지만 의식이 돌아온 덕에 머리가 조금은 맑아졌다.
일단은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심균당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다시 쪼그려 앉은 다음 조금 전처럼 웅크린 자세를 취해 최대한 체온과 체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심균당은 대조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로투스바카라
대조회가 끝나 염라대왕이 오면 벌을 받아야 했다.
정신이 몽롱해지려는데 급박한 발소리가 들렸다.

심균당은 다시 의식이 또렷해졌다.
이마와 뺨이 펄펄 끓는데도 정신은 맑았고 심지어 평소보다 머리 회전도 빨라진 것 같았다.
심균당은 멈칫했다. 많이 들어 본 발소리는 그가 여러 차례 꾸었던 악몽에서도 나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았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심균당은 더 이상 겁날 것도 없었다.
심균당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발걸음은 가까운 곳에서 멈췄다.
심균당은 숨을 깊게 들이켠 다음 차갑게 굳어 버린 팔을 움직이고 천천히 고개도 들었다.
처음 흐릿한 시야에 들어온 건 옥이 박힌 사슴가죽 장화였다.
장화는 내무부의 사의방(*司衣房: 황실이 사용하는 옷, 신발, 침구류 등을 제작하는 관서)에서 만든 것이었다.
멋지고 실용적인 장화였다. 다른 신발보다 바닥이 조금 두꺼웠고 미끄럼을 방지하는 가죽도 덧대어 있었다. 장화에는 복잡한 문양이 수놓아져 있기도 했다.
수많은 침모(針母)들이 몇 달 동안 달라붙어 만든 물건이리라. 이런 장화는 오직 섭정왕만 신을 수 있었다.

뒤이어 발가락 네 개의 금룡(金龍)이 수놓인 검은색 장포가 보였다. 황금빛 용은 위풍당당하고 패기가 넘쳐 보였다.
시선이 위로 올라가면서 잘록한 허리, 넓은 가슴, 차가운 입술 등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는 가늘고 긴 눈이 보였다.
예상했던 대로 심균당이 혐오하는 얼굴이었다.
그는 그 끔찍한 얼굴을 잠깐 본 다음 바로 시선을 피했다.
섭정왕을 보았으니 신하된 도리로 심균당은 예를 올려야 했다.
예를 올리지 않으면 섭정왕이 또 무슨 벌을 내릴지 몰랐다.
심균당은 두 손으로 차가운 바닥을 짚어 몸을 지탱했다.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던 탓에 두 다리는 마비되어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다가 휘청해 쓰러질 뻔했다.
그때 갑자기 힘센 팔이 쓰러지려는 심균당을 붙잡았다.
심균당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는 다리에 힘을 주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쓰러지더라도 섭정왕의 팔과 맞닿고 싶지는 않았다.
옆에 복도 기둥이 있어 다행이었다. 심균당은 기둥에 몸을 기댔다.
덕분에 염라대왕 앞에서 볼썽사납게 쓰러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죄를 지은 소신이 전하게 문안을 여쭙습니다.” 심균당은 어렵사리 몸을 꼿꼿이 세우곤, 키가 큰 남자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차라리 쓰러질지언정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심균당을 보고 섭정왕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너는……!’

이런 상황에서도 심균당이 예의를 차리려 하자 섭정왕은 깊은 후회를 느꼈다.
격식을 갖추니 처음 만난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심균당은 섭정왕과 많이 소원해진 듯했다.
섭정왕이 원한 건 이것이 아니었다.
“날이 추우니 어서 일어나라. 나와 함께 어서방으로 가자. 어서방에는 없는 것이 없으니 몸을 녹이도록 하라.” 섭정왕이 최대한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가장 위로가 될 만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심균당을 부축해 주려고 했다.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심균당에게 위화감이 들었고 공포에 떨게 했다.
섭정왕이 내민 손을 보고 심균당은 공포심을 느꼈다. 위선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섭정왕은 나를 뭐라고 여기는 걸까? 한낱 짐승으로 보는 걸까? 먹을 것만 주면 때린 건 기억 못 하는 줄 아는 거야? 수많은 사람 앞에서 나와 영흥후부를 모욕해 놓고 이제 와 말 몇 마디로 만회해 보시겠다? 어림도 없지!’ 심균당은 관직도 높지 않았고 영흥후부도 쇠락했지만 자존심은 있었다.
심균당은 몸을 살짝 비틀어 섭정왕의 손을 피했다.
“감사합니다, 전하. 비천한 소신이 어찌 전하를 귀찮게 할 수 있겠습니까. 소신은 집에 돌아가면 됩니다.” 심균당은 몸을 곧추세웠다.

머리에서 열이 나고 온몸이 쑤셨다. 무릎이 시큰거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지만 섭정왕 앞에서는 죽기 살기로 버티며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서려고 애썼다.
심균당이 거절하자 억지로 가장했던 온화한 표정도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섭정왕의 얼굴에서는 섣달에 부는 찬바람이 일었다.
아무리 마음에 둔 사람에게라도 무시를 당하니 어려서부터 떠받들려 자라 제멋대로인 본성이 고개를 쳐들었다.
섭정왕은 한 손으로 뒷짐을 진 채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억지로 버티는 애송이를 내려다보았다.
섭정왕의 위협적인 목소리가 심균당의 귓가를 때렸다.
“심균당, 권하는 술은 마시지 않고 기어이 벌주를 마시려는 게냐? 나와 가지 않겠다면 누구와 가겠다는 것이냐? 목수기인가?” 목수기를 언급할 줄 예상하지 못했던 심균당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섭정왕을 쳐다보았다.
섭정왕은 심균당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데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심균당은 섭정왕의 표정과 눈빛에 미세하게 담긴 미안한 감정을 눈치채지 못했다. 심균당은 몹시 실망했다.
“전하, 전하와 소신은 군주와 신하의 관계입니다. 소신이 오늘 버릇없이 굴어 전하께서는 기분이 몹시 상하셨습니다. 그리고 소신에게 벌을 주셨지요. 하지만 소신의 사생활에는 관여하지 말아 주십시오. 전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심균당은 섭정왕의 마음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쏟아 냈다.
섭정왕은 심균당이 걱정되어 부리나케 달려오느라 노여움도 모두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때 심균당이 두 사람이 상하관계임을 언급하여 신경 쓰지 말라고 하자 섭정왕은 조금 남아 있던 죄책감이 몽땅 증발하고 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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